우연히 마주친 영화 <박화영>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될 만큼 현실적이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아직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도 영화 제목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영화 <박화영>은 선정적이고 논란이 많은 영화였다. 영화 속 청춘들이 욕설과 비행, 반복된 폭력으로 좋든 나쁘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대부분 박화영이라는 영화를 보고 기분이 상했다는 댓글을 남긴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영화를 꺼버린다. 재미있게 봤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누군가에게는 인상적인 작품이고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 속 담배 연기, 폭력 등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박화영은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멘트를 항상 입에 달고 산다. 이 멘트가 박화영의 위치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광대가 되면서 불편하고 냉랭한 그 무리 속에서 버려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리에서 박화영이라는 존재는 없어도 되는 존재이며 서 또 있으면 나름 편리한 존재였기에 기묘하게 들어맞는 불균형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이었다. 때로는 권력이 법이 되고, 계급이 전부인 강압적 봉건국가처럼 가출한 가족 집단에서 박화영은 그저 밑바닥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박화영에게 동정하지 않는다. <박화영>에서는 극적인 음악이나 현란한 화면 변화가 없었고 영화는 어떤 것도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화면 너머의 현실처럼 끔찍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들은 차분하고 조용히 그들의 세계를 마주했다. 박화영은 확실히 착취당하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영화가 아니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구하는 영화도 아니다. 혼자 뛰기보다 천천히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존재와 현실만 인식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했다.
아이러니하게 화영을 포함한 세정, 세진을 바라봐 주는 건 그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같은 아이들 뿐이었다는 것이다. 오직 가출 집단의 아이들만이 바라보고 인정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에 폭력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폭력을 일삼는 영재에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 이지 않을까 싶다.
폭력은 분명 실재한다. 각 계층도 실재하며 어느 누구라도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중 하나 이상에 속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아이들의 세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참 웃긴 게 어른이 되면 그 분명했던 현실들을 잊어 버리고 의미 없는 동정으로 외면하며 피하려고만 한다. 그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화영에게 정말 필요한 건 돈과 방이 아닌 잠깐의 대화, 잠깐의 눈맞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건 아이들끼리의 대화만이 아니었다. 화영의 눈길마저 무시한 채 자리를 떠나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에도 차갑고 날카로운 폭력이 서려 있었다. <박화영>은 우리에게 단순한 불쾌감이나 자극을 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그 모든 폭력들을 직시한 뒤 이상과의 괴리를 느끼며, 우리가 이제껏 외면해왔던 진짜 현실을 마주하게끔 했다. 왜냐면 난 알아야 하니까. 어른들이 모르니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계속 궤도를 벗어나게 됩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과 아이의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고 격차가 더 멀어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고 어른들이 다 찾아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아파도 프레임 밖에서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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